한강 40

양수리(兩水里)

양수리(兩水里) 양수리로 들어가는 길은 북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통해서다. 1937년 12월 9일 경성양평선의 일부로 양수대교(兩水大橋)가 개통되었고, 1940년에는 중앙선 양평∼원주 구간이 개통되면서 북한강철교(北漢江鐵橋)가 개통되었다.2005년 중앙선 복선전철화를 하면서 2008년 팔당-국수간 복선전철이 다니면서 양수철교(兩水鐵橋)가 개통되고, 북한강철교는 2011년 10월에 국토종주 4대강 자전거 노선으로 남한강자전길로 명명하고 개통하였다.건설교통부가 수도권 동부지역의 만성적인 교통체증 구간인 팔당~양평 국도6호선 시행 프로젝트에 따라 신양수대교(新兩水大橋)를 1991년 7월 착공하여 1998년 12월 전구간을 완공하게 되었으며 기존 구도로 이용시 2시간 넘게 소요되었던 거리가 20분대로 단축되었..

한강 2024.12.26

남양주시 물의 정원

운길산역에서 보면 다리가 보인다.운길산역에서 다리까지 가기 전에 수변(水邊)을 따라가면 경의 중앙선이 보인다. 산책길를 따라가면 버드나무가 휘어지기도 하고다리를 건널 때 다리아래 물결에 따라 움직이는 수초도 보인다.다리를 건너면 운길산 수종사도 보인다.다리를 건너 뒤돌아본다. 예봉산과 예빈산도 보인다.이제 제법 추운가 보다 살얼음이 얼어 있다.연꽃이 피던 곳엔 고니가 유영하고 있다.강변으로 나무와 나무 사리에 의자가 객을 기다리고 있고,바람에 흔드리는 물결로 고목을 휘감고 있다.죽어 있기고 하고 살아 있는 고목의 반영(反影)을 그린다.물에는 종류가 많다.  동의보감 탕액(湯液)편의 수부(水部)에 물의 종류를 33가지가 있다고 하며 그 중에 추로수(秋露水)는 가을철에 이슬을 아침 해가 뜨기 전에 받은 것이..

한강 2024.12.10

팔당호(八堂湖)에서

이 팔당 근처에는 나루도 많았다. 그 중에 바댕이나루(팔당나루)가 유명하고, 근처에는 두물머리나루(양수리.兩水里), 소내나루(우천.牛川)와 움앞나루도 있었다. 바댕이나루(팔당나루)에서 바댕이의 '받'은 우리말에서 '산'의 뜻이고, '~앵이'는 땅이름에 많이 붙는 지명형 접미사이다. 바댕이는 ‘산모퉁이’의 뜻인 셈이다.‘바댕이’의 음차(音借) 표기가 팔당(八堂)이다. 받+앵이=받앵이>바댕이(파댕이)>팔당(八堂) 표기된 팔당(八堂)>에 대해 또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팔당리 인근의 산세가 좋아 하늘에서 여덟 선녀가 내려왔고, 선녀가 내려와 놀던 자리에 각각 여덟 개의 사당을 지어 ‘팔당(八堂)’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선녀 하강에 대한 이야기 외에도 팔선녀를 낳았기 때문에 ‘팔당’이라 불렀다는..

한강 2024.11.13

한강에 <서 있는 사람들>

한강뮤지엄에서 진행된 전시 중 한강 실외공원에서 전시된 정현 작가의 서 있는 사람들>이다.정현 작가는 침목, 패자재, 고철 등 쓸모없는 재료를 활용하여 독창적인 조각작품을 재작하는 현대 조각가이다. 또한 버려진 철근과 철도 침목을 활용한 작품은 자연의 순환을 상기시키고, 버려진 것들에 대한 깊은 성찰을 유도한다. 오랫동안 숲 속의 나무들은 탄생하고 나무와 나무가 서로 경쟁하면서 합의점을 찾아 살아 온 나무들이 있었다. 그 중에 잘 자란 나무들을 골라 벌목하였다. 벌목된 나무들은 잘 말린 후 단단해지자 방부처리하고 침목(枕木)를 만들었다.침목들은 기차가 지나가는 선로에서 그 무게를 이겨냈었다.세월이 지나 지금은 선로위에 나무침목보다 금속이나 콘크리트, 플라스틱, 심지어 유리섬유같은 신소재도 쓰인다. 제작과..

한강 2024.10.30

미호(美湖), 석실서원(石室書院)과 조말생묘역(趙末生墓域)

미호(美湖)는 강동대교와 미사대교 사이의 한강을 말한다.강 물이 흘러 왕숙천 물길과 만나면 더욱 유속이 느려져 강은 강이되 호수처럼 보인다. 해서 미강(渼江)이 아니라 미호(渼湖)라 불렀다『동국여지승람』과 『신증동국여지승람』을 살펴보면 “미음진의 주위 동쪽 70리에 있어 광주로통한다.”고 나와 있는데 미음진은 평구역(삼패동에 있던 역)에서 광주를 잇는 나루터의 하나로 남북 교통로의 요지였다. 흔히 미음나루, 둔지나루라고 한 미호진(美湖津)이 있다. 미호진 뒤쪽 봉우리에 지금의 수석리토성이 있어 신라말부터 고려 초기까지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흙으로 쌓아 만든 군사유적이다. 백제초기 중심적인 취락이 있었음을 알려준다.이 지역은 남양홍씨(南洋洪氏)의 선산이었다.  남양홍씨의 딸이 장동김씨(壯洞金氏) 김번(..

한강 2024.10.17

구리시 신교(新橋)를 중심으로

장자호수(長者湖水)공원 은 장자호수와 경기문화박람회장이 있다.장자호수공원에 가까운 버스정류장에 내린다는 것이 한 정거장 앞에 내리게 되었다. 호수공원을 찾아가는 농로(農路)길에 파밭, 참깨 꽃을 보았다.농로 끝이 바로 장자호수(長者湖水)공원 뒤편인 경기문화박람회장이다.경기문화박람회장 비온 후 버섯이 생생하다.장자호수 둘래길에 고목 사이로 분수가 보인다.저멀리 아파트도 보인다.코스모스길을 따라 다리를 건너면 바로 토기굴이다. 토끼굴를 지나 또 다른 토끼굴 바로 내가 만나는 시간>이 있다.여기를 지나면 구리시민한강공원이다.가는 곳마다 수국이 뒤덮혀 있다.부용도 있다.또 물놀이 시설를 한참 설치하고 있다.넓은 잔디밭위에서 연을 날리고 있다. 신교(新橋)가 보인다.서울특별시 강동구 고덕동과 경기도 구리시 토평동..

한강 2024.07.10

광진교(廣津橋)

광진교(廣津橋)입구에예스24 라이브홀이 있다.광진교가 위치하고 있는 곳이 광나루다. 아차산 아래에 있는 광나루는 강폭이 넓은 나루였으며 강을 건너면 풍납토성(風納土城)이 있다. 풍납토성은 백제의 옛 도읍지인 하남위례성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조선시대에 한양과 지방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강원도를 거쳐 동해안으로 가거나, 충주를 거쳐 경상도 지역으로 가는 요충지였다. 조선시대에는 광나루 주변에는 광진원(廣津院)이 설치되었다.문인들이 수려한 경치를 즐겼으며 풍류생활를 누리던 곳이기도 했다. 또 겸재 선생의 광진(廣津)이란 그림도 남겼다.1930년 전후 철근과 콘크리트를 이용한 다리가 놓아졌고, 1936년 10월에 광장동과 풍납동을 잇는 광진교가 한강대교 다음으로 2번째 철교(鐵橋)가 가설되었다.6.25전쟁..

한강 2024.06.13

뚝섬

청담대교 북단에 자양역이 있다.자양역은 뚝섬한강공원에 있다..자양역에는 뚝섬자벌레 서울생각마루가 있고 한강이야기 전시장도 겸하고 있다.올림픽경기장도 보인다.뚝섬벽천마당에는 그늘이 반갑다.뚝섬벽천마당을 지나 서울윈드서핑장에선 강물이 쉬원하다. 서핑장에서조금지나 잠실대교다.잠실대교엔 한강의 수위를 일정하게 유자해 주는 수중보(水中洑)가 있다. 잠시대교 남단엔 어도(魚道)가 있으나 잠실대교 북단은 어도(魚道)가 없지만 흐르는 물이 힘차다. 잠실대교와 롯데타워, 강 물길이 함께 어울려지고 있다.

한강 2024.05.02

응봉(鷹峰)과 서울숲

조선시대에는 살곶이다리에서 응봉(鷹峰)을 보고 한양(漢陽)에 다 왔구나 하였을 것이다. 또 지인이 한양에서 지방으로 갈 때 살곶이 다리를 건널 때까지 응봉(鷹峰)에서 배웅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응봉을 휘둘러서 철길이 지나고 산책로가 있다. 응봉에서 한강으로 유입하는 중랑천을 건너는 용비교를 지나면 서울숲에 다달를 수가 있다. 서울숲은 뚝섬이었다. 원래는 중랑천과 한강이 합류되는 지점으로 지형의 형태가 주변으로 강이 흘러 마치 섬모양 같다고 하여 독기(纛旗)를 세운 섬 뚝섬이라 부르게 되었다. 뚝섬은 태조 때부터 임금의 사냥터였던 곳으로 임금의 행차시에는 그것을 알리는 대장군의 기인 독기(纛旗)를 세워 그것을 알렸다. 1908년 대한민국 최초 정수장이 세워졌으며 1940년 뚝섬유원지, 1954년 한국마사회..

한강 2024.04.02

남산 부군당(府君堂)

부군당(府君堂)은 민간신앙의 대상물인 신을 모셔 놓은 신당이다. 일반적으로 마을을 수로하는 신당(神堂), 성황당(城隍堂)과 달리 서울을 중심으로 한 경기지역에서만 불리던 당의 명칭이다. 부군당은 조선전기부터 한양의 각 관아에 별도의 부속시설을 설치하여 관아의 수호신을 모신 사당으로 부군당(附君堂) 또는 부근당(付根堂)이라고도 하였다. 대부분의 부군당이 서울지역에 집중되어 있으며 서울에서는 한강변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부군당의 ‘부군’이 한자어 府君, 府根, 府群, 付根, 富降, 符君 등 다양하게 표기되어 왔다. 이들 중, 가장 보편적으로 쓰였던 것이 ‘府君’이다. 이 용어가 등장한 것은 일제강점기때인 1937년 서울 무가를 조사한 아카마쓰 지조(赤松智城)ㆍ아키바 다카시(秋葉 隆)이 펴낸 《조선 무..

한강 2024.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