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팔당호(八堂湖)에서

김시동 2024. 11. 13. 16:03

이 팔당 근처에는 나루도 많았다. 그 중에 바댕이나루(팔당나루)가 유명하고, 근처에는 두물머리나루(양수리.兩水里), 소내나루(우천.牛川)와 움앞나루도 있었다.

 

바댕이나루(팔당나루)에서 바댕이의 ''은 우리말에서 ''의 뜻이고, '~앵이'는 땅이름에 많이 붙는 지명형 접미사이다. 바댕이는 산모퉁이의 뜻인 셈이다.

바댕이음차(音借) 표기가 팔당(八堂)이다.

 

+앵이=받앵이>바댕이(파댕이)>팔당(八堂)

 

표기된 <팔당(八堂)>에 대해 또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팔당리 인근의 산세가 좋아 하늘에서 여덟 선녀가 내려왔고, 선녀가 내려와 놀던 자리에 각각 여덟 개의 사당을 지어 팔당(八堂)’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선녀 하강에 대한 이야기 외에도 팔선녀를 낳았기 때문에 팔당이라 불렀다는 유래가 전하여진다.

 

1914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북한강과 한강이 만나는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팔당리에 남양주 고안수위측정소가 설치된 후 한강의 수위관측을 시작하였다.

조선하천조사서(조선총독부, 1929)1917년 조위(潮位) 및 홍수위에 대한 목측을 시작했다는 내용이 표기되어 있다.

1930년재에는 부자식 자기수위계를 설치하여 보다 정확한 수위관측을 할 수 있데 되었으며 관측한 수위자료는 조선하천조사서와 한국수문 조사연보애소 확인할 수 있다.

난양주 고안수위관측소는 정통(井筒)과 콘크리트 기둥, 강안(江岸)과 관측소를 연결하는 교각(橋脚) 등으로 구성되었는데 현재 교각은 소실되어 남아 있지 않다.

한강의 수위를 측정하고 기록한 우리나나의 근대적 수문(水文)관측 역사를 알 수 있으며 건립 당시의 토목기술과 수위측정방식 등을 확인해 볼 수 있는 점. 등대와 비슷한 모습의 건축물이 현존하고 있는 점 등에서 그 역사성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200147월 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팔당댐을 건설하기엔 그 당시 국가 재정이 어려운 시기에 당시 190억원이라고 하는 엄청난 건설비 확보도 난제이고 댐 축조 및 운영 기술자도 태부족이었다. 이러한 한국 정부의 어려운 상황을 잘 이해하고 나선 사람이 바로 샹바르 대사였다.

1965년에는 프랑스 차관 5625만 프랑의 계약도 이끌어 내면서 기적을 일구었다. 이로써 프랑스에 의한 한국인 기술자 양성과 함께 19731210년간 설계 및 공사기간을 거쳐 수력발전기 4호기까지 마련한 팔당댐을 완공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수력발전기의 시운전을 거쳐, 정확히 50년 전인 1974524일에 박정희 대통령 내외가 참석한 공식적인 준공식이 열렸다. <팔당 샹바르 댐>이라 했다.

현재 연간 전력생산량이 25600Kw인 팔당댐의 1차 목표가 전력 생산이었다. 이런 연유로 한국전력주식회사(KECO)에서 시작해 현재까지 후신인 한국수력원자력에서 관리하고 있다. 오늘날에 이르러 전력 생산량과 홍수조절 기능은 비단 미약하지만, 시간을 거치면서 용수 기능을 강화해 왔다. 이 덕분에 체류기간 5.4, 평균수심 6.5m(최대수심 24.3m), 호반둘레 77km, 만수면적 36.5, 저수용량 2.44억톤, 상수원수 공급능력 817만톤/일으로써 수도권 2600만명의 생명줄이 되었다. 팔당댐 가까이 잔잔한 호숫가의 카페를 찾는 관광객이 사시사철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는 등 원래에 기획했던 관광자원으로도 가치를 더하고 있다.

 

팔당댐 완공으로 옛 독백탄(獨栢灘) 지금의 두물머리까지 큰 팔당호(八堂湖)가 사시사철 아름다운 풍광을 만들어준다.

이 풍광 중 토끼섬 있다. 옛 능내역에서 내려 마재성지 아래에 있다.

토끼섬이 한강과 한강안을 막아서 큰 연못을 만들어졌다.

이 연못에 아름다운이야기가 전해진다.

아득한 예날 남한강과 북한강의 물줄기가 하나와 만나는 두물머리에 연화난자라는 아리따운 아가씨가 살고 있었다. 마을 청년들은 연화낭자에게 반해 사랑을 고백하지만 연화낭자는 오로지 마을 연못에 피어 있는 연꽃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날, 두물머리를 지나던 젊은 사공이 돛단배를 잠시 묶어 두고 연못에서 쉬기를 하였다. 연화낭자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무뚝뚝한 젊은 사공에게 관심을 갇는다.

어느 날 옷자락이 나뭇가지에 걸려 연못에 빠진 연화남자를 젊은 사공이 구해 주었고, 그 뒤로 연화낭자는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연화낭자는 매일 연못가에서 젊은 사공을 기다리며 그리워하였고, 그가 오면 곱게 핀 연꽃처럼 표정을 밝아졌다. 하지만 사공은 그런 연화낭자의 마음을 알면서도 차갑기만 했다. 연화낭자는 어머니가 가르쳐 준대로 보름달이 뜨는 날 달님께 기도를 드린 것이 어언 백일이 되었다. 백일 밤이 되던 날 연못에 간 연화낭자는 연목가에 새롭게 핀 연분홍빛의 연꽃을 발견한다. 분명 어제까지도 없었던 새로운 연꽃이었다.

 

연꽃을 감상하고 있는 연화낭자에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쌀쌀맞게 굴던 젊은 사공이 다가와 연화낭자에게 연꽃의 꽃말은 순결, 청순이라고 들었소, 그대의 청순하고 순결한 마음은 마치 연꼴을 닮은 것 같소, 우리 평생 함께 합시다.” 라고 청혼을 하엿다. 젊은 사공은 연화낭자의 정성을 알고 연분홍빛의 연꽃을 심어두었던 것이다. 연화낭자는 얼굴을 붉히면 청혼을 받아들였고, 두 사람은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았다. 그 이후로 이 마을은 연꽃마을로 불렀고, 연꽃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면 짝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소문이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