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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우제(祈雨祭)를 지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26년 8월 22일(토) 이젠 기우제(祈雨祭)를 지내지 않아도 될 것 같다.월대에 잡초가 무성하다 비를 피하기도 하지만비를 맞고 있다.“ 내 가슴속켜켜이 쌓인 먼지들 흐림 마음과 나쁜 생각들불평과 이움과 원한까지도 너의 신령한 힘으로씻어주는 것”같다※.※ 비를 노래하는 시정연복 저 높은하늘에서부터 내려와 땅의 더러움을말끔히 씻어주는 맑고 투명한물이여 세상을 깨끗이 하려거든내친김에 내 가슴속켜켜이 쌓인 먼지들 흐림 마음과 나쁜 생각들불평과 이움과 원한까지도 너의 신령한 힘으로씻어주렴

종묘 2026.08.27

총석정(叢石亭) 4 총석정(叢石亭)을 그린 화가들

8. 이재관(李在寬:1783~1837) 총석정 『근역화휘(槿域畵彙)』 중 "총석정도(叢石亭圖)". 1911년 서예가 오세창이 고려말에서 대한제국말까지 선인들의 필적을 모아 엮은 근『근역화휘(槿域畵彙)』가 있다. 『근역화휘(槿域畵彙)』 중 "총석정도(叢石亭圖)". 이다.잦가의 시선 9. 강인(姜亻寅)의 총석정도(叢石亭圖)> 강인, 총석정, 逗雲池亭畵帖, 종이에 수묵담채, 18x42.2cm 강세황의 큰아들 강인이 회양부사 시절 부채에 그린 총석정도(叢石亭圖)>가 『두운지정화첩(逗雲池亭畵帖)』에 포함되어 있다. 필치는 아버지 강세황을 배워 미숙하지만, 강인을 문인화가로 당당히 이를 만하게 한다. 바다 쪽에서 포착하던 기존 총석정도와 달리 내륙에서 바라보이는 바닷가 주상절리 총석을 그린 시각이 색다르다. V자..

그림 이야기 2026.08.21

총석정(叢石亭) 3 총석정(叢石亭)을 그린 화가들

3.연객(烟客) 허필(許佖, 1709-1768) 총석도(叢石圖) 종이에 수묵담채, 45×80㎝, 삼성미술관리움 소장 연객(烟客) 허필은 강세황과 마음으로 서로 알아주는 지심우(知心友)였다. 허필에 대한 기록 중 "늦은 나이에 성균관에 머물며 진사가 되었는데, 성균관 유생들의 부채는 허필의 그림이 아니면 손에 잡지 않았다. 담배 피우기를 좋아해 연객으로 호를 삼았다. 성균관 유생은 팔도에서 뽑혀 올라온 수재였지만 허필의 문장과 그림이 그 가운데 으뜸이었다."라고 『18세기 조선 인물지 병세재언록(幷世才彦錄)』에 나온다. 그러나 그림 그리는 일이 번거롭기도 하려니와 어려운 일이라며 잘 그리려 하지 않았다. 초선(草禪)도 그의 호인데 연초(煙草), 남초(南草), 남령초(南靈草), 망우초(忘憂草)라고 했던 담배..

그림 이야기 2026.08.19

총석정(叢石亭) 2 / 총석정(叢石亭)을 그린 화가들

인류가 유토피아적이고 이상향을 찾는다면 서양에서 제우스 등 여러 신들이 사는 올림푸스산일 것이다. 조선에서는 유토피아적 세계를《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에 나오는 신선(神仙)이 사는 도원(桃源)이다.현실에서 신선이 사는 도원(桃源)을 찾는 곳을 금강산(金剛山)이거나, 연못을 파고 삼신산(三神山)를 만들어 산선이 살고 있는 공간을 만들기도 했다. 그 중에 하나가 총석정(叢石亭)이다. 총석정(叢石亭)은 강원도(江原道) 통천군(通川郡) 고저(庫底)에 있는 정자(亭子). 관동(關東) 팔경(八景)의 하나로, 주위(周圍)에 현무암(玄武巖)으로 반듯하게 서 있는 총석을 입총(立叢)이라 하고 앉아 있는 것은 좌총(坐叢), 누워있는 것은 와총(臥叢) 등 의 총석(叢石)으로 이 바다 가운데에 솟아 있어 절경(絕景)을 이룬..

그림 이야기 2026.08.18

복(伏)날의 그림자인가

26년 8월 8일(토) 어제가 입추(立秋)다.삼복(三伏) 더위는 기세가 꺽이지 않고 있다.많은 사람들이 여름휴가를 갔다. 서순라길은 조용하다.외대문(外大門) 앞도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하지(下池)옆에 어미오리가 새끼오리를 찾아 헤매고 있다. 더위를 먹은 것일까. 궁능유적본부에서 《폭염 증대 경보 발효로 인해 해설 안내를 중단합니다.》라는 안내을 하고 있다.궁궐지킴이들은 몇 몇 관람객들에게 간단한 해설을 하기로 했다.그나마 관람객들은 외국인들이었다.칠사당(七祀堂) 옆에 개(犬) 모양의 그림자가 보인다. 오행설(五行說)에 하지(夏至)가 지나면 해는 이미 가을을 향는 입추(立秋)인데, 땅에는 여전히 뜨거운 복사열이 남아 있다.가을의 금(金) 기운이 여름의 화(火) 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엎드려 굴복한다는..

카테고리 없음 2026.08.12

용문사(龍門寺) 영목(靈木) 은행나무(銀杏樹)

신라의 고승(高僧)인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땅에 꽂았더니 뿌리가 내렸다는 전설과 신라 마의태자(麻衣太子)가 나라를 잃은 슬픔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는 길에 심었다는 전설을 가진 은행나무다. 이 나무의 수령(樹齡)은 약 1,100년 이상으로 추정된다. 조선조(朝鮮朝) 세종(世宗)은 정삼품(正三品)의 직첩(織牒)을 하사(下賜)하신 공손수(公孫樹) 당상목(堂上木)이며, 영목(靈木), 신목(神木), 천왕목(天王木)이라고 한다. 영목(靈木)는 용문산(龍門山)을 품고 용문사(龍門寺)와 한국민족독림운동발상지로 양평의병(陽平義兵)의 활동지와 용문사관광지를 품고 있다. 용문사 관광지는 이곳을 찾는 조선조(朝鮮朝) 많은 학자들이 남긴 시비(詩碑)가 있다. 김안국(金安國)는“용문산 승려 유선(惟善)이 ..

사찰 2026.08.05

하늘에서 내려온 봉황(鳳凰)

25년 7월 15일(토) 하지(下池)에 연꽃이 부활한 것인가.중지(中池)엔 어미오리가 있는데도 얼마 전 어미와 떨어져 있었서 인가. 새끼오리들이 홀로 서기를 한다. 관람객들은 드문 드문 조용한 사유하는 공간이 되었다.긴 종묘 보수공사가 끝난 뒤 모처럼 나타난 청설모가 여유로워 보인다. 종묘관리소가 향대청(香大廳)에 무더위 쉼터를 마련했다.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복원정비과에서 《종묘.영녕전 문화유산 고건물 보수》로 기와 교쳬 작업 진행 중이다 (보수기간: 2026 7.14~2026.7.31.) 공사현장에 봉황문(鳳凰紋) 수기와와수자문(壽字紋) 수기와가 있다.막새 기와(瓦當)는 수기와(圓瓦當)과 암기와(平瓦當)이 있는데 종묘에는 수기와에 봉황문(鳳凰紋)과 수자문(壽字紋) 이 주류를 이루고 암기와에는 용문(..

종묘 2026.07.28

1900년 초에 지금의 중지(中池)에 연꽃

26년 7월 11일(토) 전날 비가 조금 왔다.하지(下池)에 연꽃이 피었다. 비로 인해 하월대에 청색 띠가 설치되었다.“그 내용은 관람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우기가 끝나는 시일 내에 복구하여 안전하고 쾌적한 관람 환경조성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궁능유적본부 종묘관리소 종묘정전보수 공사후 비가 오면 반복되는 일이다. 더운 날씨 탓인가 관객은 조용히 종묘를 관람하고 있다.이 더운 여름에 피는 연꽃이 하지(下池)에 피었다. 연꽃은 언제 연못에 피기 시작하였는가 종묘전도 및 종묘배치도로 추정해 본다. 특이한 것은 《종묘친제규제도선병풍(宗廟親祭規制圖說屛風, 1866~1899)》에 그림에는 설명문에는 지(池) 로 표기 하였지만 설명문에는연지(蓮池)로 표기되었다.병풍(屛風)에 표기되기 전 모든 그림에는..

종묘 2026.07.14

천안(天安)의 호도(胡桃)나무와 광덕사(廣德寺)

천안의 명물이 호두과자다. 호두의 원래 이름은 호도(胡桃)다. 생긴 게 복숭아 씨앗과 닮았는데 오랑캐(胡) 나라에서 들어온 복숭아(桃)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한자로 '호도(胡桃)'로 쓰지만 표준어로는 '호두'로 표기한다.중국에서 들여온 가래나무란 뜻으로 당추자(唐楸子)라고도 했다. 조선시대는 물론이고 현대도 가끔 쓰이는 명칭이며 방언으로는 오히려 호두가 추자라고 불린다. - 나무위키 천안의 호두나무 시식지(始植地)가 천안의 광덕사(廣德寺)이다.고목(古木)인 호두나무는 고려 충렬왕(忠烈王,1236~1308)때 고려(高麗)의 외교가·통역관·무신인 .영밀공(英密公) 류청신(柳淸臣 미상~1329)이 원(元)에 다녀오면서 호두나무의 어린나무와 열매를 가져와 광덕사(廣德寺)에 심었던 호도(胡桃)이고, 열매는 자..

사찰 2026.07.09

향로(香路)는 제관(祭官)이 가는 길

26년 6월 27일(토) 어미 오리가 보이지 않는다.중지(中池)에 오리 세 마리가 방황하고 있다. 어미 오리를 찾다가 지쳐 보인다.오늘은 사단법인 한국예절교육협회에서 예약이 있어 정명숙 선생님이 해설하였다.협회에서 오신 분들은 곱게 한복을 입으셨다. 박석(駁石)이 그림자에 녹아 새롭게 보인다. 외대문에서 현 화장실까지 와화장실에서 재궁까지의 길이다.외대문에서 재궁까지 길은 왕이 가마를 타고 가는 길이다. 조선왕조실록 정조(正祖) 16년에서 외대문(外大門)에서 정전(正殿)에 이르는 길을 신로(神路)로 표기하고 신로(神路)옆 협로(狹路) 즉 어로(御路)와 세자로(世子路)를 향로(香路)로 표기하고 있다.신로(神路)와 향로(香路)을 포함해서 세 길을 박석(駁石)이라고 표기하고 있다.또 재궁(齋宮)에서 정전에 이..

카테고리 없음 2026.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