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풍납토성

김시동 2022. 7. 28. 18:00

풍납토성은 북쪽에 한강이 흐르고 남쪽에 남한산성이 있다.

북쪽 아차산이 한강을 건너서 풍납토성을 내려다 볼 수 있다.

통상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와 다른 특이한 지형이다. 이는 한강을 중심으로 해양무역을 활발하게 하는 조건이 된 것이 아닌가 한다. 해상무역의 주요국가는 중국과 일본이었으며, 멀리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등과 교류한 것을 알려진다.

풍남토성은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청동제다리미 즉 초두(靑銅鐎斗) 및 금제 둥근 귀걸이, 금제 허리띠 등이 발견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므며, 1963년 사적 제11호로 지정되어 오늘까지 보존되고 있다.

1997년 실시된 발굴조사에서 왕국 터로 볼 수 있는 증거들이 다수 발견되었다. 이후 이 토성은 백제의 시조 온조가 기원전 18년에 한강 유역에 정착하여 처음 도읍한 하남위례성(河南慰禮城)인 것으로 인정되었다.

475년 고구려 장수왕은 백제 원정을 단행했다. 개국 이래의 수도였던 한성이 다시 함락되고, 개로왕과 왕족들이 고구려군에게 비참하게 처형되는 등 거의 파멸상태에 이른다(475).

풍납토성은 약 475년간 백제의 수도로 약 1,500년 전에 존재하였다.

1999년대 후반 문화재청 국립문화재 연구소에 풍납토성의 역사적 규명을 위한 전담 조사단이 만들어지면서 풍납토성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가 본격적으로 개시되었다. 특히 미래마을 재건축 부지는 풍납토성에서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조사가 이루어진 지역으로(2004~2011), 도로유구와 다량의 기와가 폐기된 수혈, 대형주저지, 지상식 건물지 등이 확인되어 성 내부부속시설의 일면을 파악하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 풍납토성은 남벽, 북벽, 동몆(일부 제외)1.9km 가량 보존, 정비되어 있다. 성벽의 평면 분포형태 등을 고려해 볼 때, 서벽이 존재했다면 총 둘레를 3.5km까지로 추정해 볼 수 잇다.

 

또 풍납동 토성의 남쪽에 위치한 몽촌토성은 남한산에서 벋어 내린 구릉의 끝자락 능선을 이용해 만든 일종의 산성이다. 몽촌토성은 백제 한성 후기에 방어를 위해 축조되었므여, 올림픽공원 내에 위차해 있다. 특히 삼국사기에 따르면 고구려 장수왕이 3만 대군을 보내 백제의 도음인 한성의 북성(北城)7일 밤낮으로 공격해 함락시킨 후 남성(南城)으로 옮겨 공격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이는 각각 풍남동 토성과 몽촌토성으로 추정된다.

 

풍납토성 내에 있는 발굴현장이다.

이곳에서 미래마을 시장쪽으로

풍남백제문화공원이 있다.공원에는 거주지 및 건물지가 전시되어 있다.

풍납 백제문화공원에서 한강으로 이어진 진출로로 나오면 자전거길 옆 버드나무가 강과 강변을 분리하고 있다.

강변으로 올림픽 대교가 보인다.

올림픽대교에서 조금 하류로 내려가면 성내천이 나온다.

성내천 입구에서 바로 잠실철교가 나온다. 이 철교 위로 2호선 전철이 달리고

있으며 남쪽으로 잠실나루역이 있다.

잠실나루역에 가는 길에 본 강변로에 자동차가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