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

종묘공원에 월남 이상재(月南 商在) 동상(銅像)

김시동 2025. 2. 26. 18:08

25 2 22일(토)

 

종묘 숲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있다.

땅은 녹아 질퍽하고

중지는 물 속이 훤히 보인다.

햇빛은 더욱 따뜻한 것 같다.

종묘 정전는 보수 중이다.

종묘 입구에는 사람들이 나들이하고 있다.

한 시민이 새들에게 모이를 주자 비들기가 야단스럽다. .

비들기가 무서워 참새들은 한참 눈치를 보고 있다.

이곳 종묘 바로 앞 종묘공원에 월남 이상재(月南 李商在) 동상(銅像)이 있다.

 

이상재(李商在) 선생은 정치가종교가(1850~1927). 자는 계호(季皓). 호는 월남(月南). 1888년에 주미 공사 서기로 부임하였으며 귀국 후에 의정부 참찬을 지냈고, 서재필과 독립 협회를 조직하여 민중 계몽에 힘썼다. 31 운동 후 조선일보 사장을 거쳐 1906년에 기독교 청년회장이 되었다. 1927년에 신간회 초대 회장에 추대되었다.

 

월남 이상재(月南 李商在) 동상(銅像)

우리 현대미술사에서 손꼽히는 유명 조각가 김경승(金景承 1914~1992)이 조각하고

근현대 서예계를 대표하는 김충현(金忠賢 1921~2006)이 쓰다.

윤보선(尹潽善) 대통령이 동상(銅像)의 글을 쓰다.

 

윤보선 데통령 글

원남 이상재 선생(1850~1927)은 오천년 우리 역사의 흐름이 멈첬던 조선조의 암담한 말기와 일제의 포악한 식민통치 아래서 실망 속에 헤매던 이 겨레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 넣고 잃어버린 조국의 광복을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우신 위대한 지도자였습니다.

 

선생께서 기다리고 바라시던 조국의 광복을 보시지 못한 채 감기지 않는 눈을 감으셨을 때 온 겨레는 쏟아지는 눈물로 삼천리 강토를 적시면서 그 영구를 비통장엄한 사회장으로 모신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슬프다 만좌의 청년들을 웃기다가 울리시던 그 격조높은 한서린 풍자도 영영 들을 길이 없도다.

 

여기 선생을 사모하는 후생들은 1985 3 29일 선생께서 가신지 58주년이 되는 그 날에 몸담아 활동하시던 기독교 청년회관에 모여 추모식을 올리고 선생의 동상 건립을 결의하였습니다.

이제 사회각계의 참여로 이 뜻이 열매맺어 오늘 선생의 위대한 야인상을 무술년만민공동회와 기미년만세운동이 거푸일던 종로 옛 거리 새로 마련된 시민광장에 우뚝 높게 모시게 되었습니다.,

귀대한 스승 모습 영원히 빛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