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용산구 이촌동과 동작구 노량진동을 연결하는 철도교로 A선, B선, C선.D선이 있으며 2006년 6월 10일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 제250호로 지정되었다
아래 그림에서 오른쪽에서부터 초록색 이 C선이고, 안쪽의 회색이 D선이다
그림에서 오른쪽에서부터 초록색 이 B선이고, 안쪽의 회색이 A선이다
A선은 1896년 3월 29일 경인철도 부설권이 미국인 모스(Morse,J.R.)에 의하여 취득된 뒤, 1897년 착공하여 1900년 7월 5일 준공되기까지 총 4년여에 걸쳐 진행된 대공사였다. 당시 우리나라 신기술과 신토목공사의 도입의 계기가 되었다.
B선은 1911년 7월에 착공하여 이듬해 9월에 준공되었다. 1913년 강재(鋼材) 거더(girder)를 새로 교체하고 교각은 일부를 개축하여 부재의 강도를 보강하였고, 1925년 7월에는 을축년 대홍수(국내기록상 최대홍수)로 인하여 축제가 일부 유실되자, 종래의 축제를 개축하여 교량구조물을 1m 높이기도 하였다. 처음 가설할 당시의 한강철교는 노량진 쪽에서부터 10경간까지만을 강교로 가설하고 나머지 용산 쪽은 축제였으나,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이 제방이 유실되자 새로이 교각을 세워 가설한 것이다.
A선과 B선 2개의 다리는 단선철교이다.
C선은 여러 노선 개통으로 경성(서울)을 기점으로 하는 열차운행횟수의 증가와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등 일제의 대륙침략전쟁 가속화로 경부선의 완전한 복선화를 위해 1944년 8월 1일 A선의 하류 측에 A·B선과 다른 트러스 양식의 복선 교량을 병설하여 C선이 개통되었다. 이를 계기로 경성 - 영등포 구간을 공용하는 경인선과 경부선이 분리되는 형태로 2복선 구간이 탄생하였다
1950년의 6 · 25전쟁으로 말미암아, 그 해 6월 28일 아군작전상의 폭파로 3선이 완전히 폐선되었다. 그 뒤 1951년 수도 서울을 수복한 뒤 A선(중간에 위치한 교량)을 우선 1951년 4∼6월 사이에 복구하였고, B선(상류 한강대교 쪽)은 1952년 2∼6월 사이에 가복구하여 임시로 사용하였다. 이어서 C선(하류의 여의도 쪽)은 1952년 10월에 착공하여 1957년 7월에 완전복구한 뒤, 가복구하여 임시로 사용하던 A · B선은 사용을 중지하고 C선만을 사용하였다.
C선 한국전쟁 당시 폭파된 다리중 제일 먼저 1957년에 복구되었다.
A선과 B선 2개의 다리는 단선철교이다. 2개의 다리 모두 한국전쟁 당시 폭파되었던 것을 1969년에 복구되었다.
D선은 1980년대 후반부터 경인선의 급속한 승객 증가로 경인선 2복선화가 시작되면서 이미 2복선화 구간이었던 용산-구로 구간의 3복선화가 착수되었다. 1994년 12월 개통되어 지금의 한강철교가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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