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한강공원에서 본 행주(幸州)나루터이다.
현재 행주는 행주내동과 행주외동이 있다. 그림에서 보이는 풍경이 행주외동이다. 행주산성이 있는 행주내동은 다음에 기록하겠다.
행주(幸州)라는 지명은 고려시대에 왕이 다녀갔다는 의미(行幸)로 행주(幸州)라 불리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살구가 많았는지 행주(杏州)와 행주(幸州)가 함께 쓰였다.
개화산(開花山)과 행주산성(幸州山城)이 있는 덕양산(德陽山) 사이를 흐르는 한강이 북한산(北漢山)에서 발원된 창릉천(昌陵川)과 합류한다. 이곳에서부터 강의 폭이 넓어져서 행호(杏湖)하 한다.
1978년 7월 22일에 준공한 행주대교(幸州大橋)가 건설되기 전까지 배를 타고 행호를 건넜으며 행주나루터가 있었다.
배를 타고 행주나루터에 도착한 사람들은 풍광이 좋은 곳에 낙건정(樂健亭)과 귀래정(歸來亭)이 넓게 차지하고 강변 뒷쪽에 마을이 형성되었다.
낙건정(樂健亭)과 귀래정(歸來亭)은 겸재(謙齋) 선생의 행호관어(杏湖觀漁)에 보인다.
그림의 언덕에 있는 집이 김동필(金東弼· 1678∼1737)이 벼슬에서 물러나 ‘건강하게 즐기며’ 살기 위해 지은 낙건정(樂健亭)이고, 귀래정(歸來亭)는 김광욱의 별서다
겸재, 사천(槎川) , 김동필이 같은 연배(年輩)라서 그런가 별도로 낙건정과
귀래정 그림을 남겼다.
행호관어(杏湖觀漁) 왼쪽에 사천(槎川) 이병연(李秉淵)의 제시(題詩)가 있다.
春晩河豚羹, 夏初葦魚膾 桃花作漲來 網逸杏湖外
늦봄이니 복어국이요, 초여름엔 웅어회라
복사꽃 가득히 떠내려오면, 어망을 행호 밖에서 잃겠구나
행주는 복사꽃이 만발하고 행호(杏湖)에서 봄에는 복어, 여름에는 웅어를 잡았다고 한다.
행호(杏湖)는 서해의 조수가 밀려들어 한강 민물과 뒤섞이는 곳이라 많은 어류들이 모이므로 계절의 별미가 행주 웅어와 행주 복어가 유명하였다. 모두 음력 3, 4월경의 늦봄과 초여름에 제 맛이 나는 별미로 사옹원(司饔院)에서는 궁중음식을 위해 제철이 되면 덕양산 쪽의 고양군과 양천현에 그 진상을 재촉하게 된다. 그러면 양군에서는 어선단을 규합하여 본격적인 웅어와 복어잡이를 나서게 되는데, 아름다운 행주 별서지대 아래에서 전개되는 고기잡이를 그려낸 것이다. 지금은 이곳에서부터 황복어가 인기 있다.
지금은 행호를 건너는 행주대교(幸州大橋)가 있다.
행주대교의 남북단으로 일산신도시와 중동신도시가 들어서면서 교통량이 증가하여 교통난이 발생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신행주대교를 사장교 형태로 건설하였다.(사업비 170억원) 본래 1987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992년 말에 개통할 예정이었으나, 1992년 여름에 건설 중이던 신행주대교가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하자, 재건설에 3년이 더 걸림으로써 결국 1995년 5월에 개통하였다. 2000년 12월에 제2신행주대교까지 완공되면서 구행주대교는 벽돌 등의 칸막이로 폐쇄되었고, 2011년 일부 구간은 철거한 상태다.
일부 구간 청거된 부분이다. 적자(赤字)로 <추락주의 전방 2km 신곡중수부 접근금지>를 표시하고 있다.
행주대교를 건너면 대저택이 있던 곳은 주로 음식점이 차지하고 뒷 쪽 마을이 보인다. 마을 언덕에 행주성당이 보인다.
행주성당은 1910년 처음 지어져 1928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고 1949년에 증축하였다.
행주성당은 한국교회 사상 28번째였으며 서울대교구 내에서는 9번째 성당으로 기록된다. 행주성단은 2009년 5월 31일 본당승격 100주년 기념미사를 봉헌하였고, ‘100주년 역사 기념관’를 완공하여 현재 소규모 피정의 집과 교구사제 숙소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
지금의 행주성당은 처음 지어진 후 벽돌 벽과 시멘트 기와 등으로 변형되고 노후화된 것을 1950년대의 사진 등 옛 모습을 고려하여 2015년에 보수 한 것이다. 종교건축물로써 보존가치가 높음을 인정받아 등록문화재 제455호로 지정되었다.
십자가의 길 14처
행주성당은 한국교회 사상 28번째였으며 서울대교구 내에서는 9번째 성당으로 기록된다. 행주성단은 2009년 5월 31일 본당승격 100주년 기념미사를 봉헌하였고, ‘100주년 역사 기념관’를 완공하여 현재 소규모 피정의 집과 교구사제 숙소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
성모당은 2016년 1월 25일에 교황청 내사원이 승인하였으며 대구 대교구장님의 허락을 얻어 대구 대교구 성모당을 모델로 한 행주산겅 성모당을 건립하였다. 이곳을 찾는 모든 순례객들이 행주성당 성모당을 통하여 성모님의 위로와 전구를 체험할 수 있다.
그림으로 본 행주 성당 사진
성당에서 강변쪽으로 가다보면 어구(漁具)와 어선(漁船)들도 보인다. 갑자기 소낙비가 내려 행주대교 아래서 어부라고 생각하고 어구와 함께 담아본 것이다.
강변을 따라 난 길이다.
조금 가면 행주나루터가 보이고
행주쉼터가 보인다.
이곳에서 조금 안쪽으로 행주서원(幸州書院)이 있다,
문이 굳게 닫혀있다.
2019년에 왔을 때 보다 많이 정리되어 있었다.
행주서원(幸州書院)은 원래 기공사(紀功祠)라는 명칭으로 1842년(헌종 8)에 왕명에 의해 건립되었다.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행주대첩(幸州大捷)을 승리로 이끈 충장공(忠莊公) 권율(權慄, 1537∼1599)을 배향한 곳이다. 행주서원지(幸州書院址)는 1985년 9월 20일에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71호로 지정되었다.
1970년 주축만 남아 있는 기공사를 대신하여 행주산성 안에 새로 지은 권율 장군의 사당인 충장사(忠莊祠) 옆으로 옮겨놓았다가 행주서원이 재건되면서 2011년에 원래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다가 1988년에 강당을 건립하고 1997년에 사당(祠堂)을 복원하여 기공사라 편액하였다.
현재의 행주서원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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