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1일 목련 새 잎이 돋아났다.
명자나무꽃도 찬란하다. 궁산(宮山)과 서울식물원에 갔다.
양천향교역에서 겸재정선미술관으로 가다보면 상산(常山) 김도연(金度演) 동상이 보인다. 이곳에서 1965년 6월 10일 제17회 권농일기념식을 양천초교 교정에서 박정희 대통령 임석하에 거행하였다고 한다. 여기서 기념식을 한 것은 이곳이 양천평야이기 때문이다.
양천평야(김포영평야)은 양천현(陽川懸)에 속해 있으며 양천현(陽川懸)의 관아(官衙)는 현 겸재미술관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관아의 배산(背山)이 궁산(宮山)이다.
궁산은 반궁(泮宮)이 있는 산이라고 한다. 반궁(泮宮)은 제후의 나라에 세운 교육 기관으로 반수(泮水)가 주위를 둘러싸고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성균관(成均館) 또는 향교(鄕校)을 말한다.
궁산(宮山)은 한강을 중심으로 각축을 벌이던 삼국시대부터 육로와 수로를 확보하기 위한 중요 군사거점이다. 백제는 서해에서 한강으로 거슬러 오는 침입을 경계하고 북방을 방어하기 위한 군사 요충지로 삼았다. 통일신라 때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산성터인 양천고정지가 있다.
고려시대에는 지금의 증미산(拯米山 또는 拯山) 아래 공암진(孔巖津)을 통해 개성과 남부지역을 연결하는 중요한 요충지였다.
조선시대에는 행주와 더불어 바다에서 한강으로 이어지는 교역로 상의 길목으로 교통 및 군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 지역이 되었다. 개화산(開花山), 행주산성, 파주의 오두산성 등과 함께 한강어귀를 지키던 중요한 성이었다.
임진왜란 때 권율장군이 행주산성에서 대승을 거두기전에 이 성에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궁산(宮山) 소악루(小岳樓)에서 한양의 안산(鞍山, 무악산) 봉수대(烽燧臺)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궁산에 관산성황사(關山城隍祠)가 있다. 성황사(城隍祠)는 마을 사람들은 예부터 도당(都堂) 할머니를 모시고 있다 한다.
조선조 중종(中宗)25년 (1530) 편찬(編纂)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이르기를 성황사(城隍祠) 성산(城山)에 있다고 하였다. 산 아래 거주하는 민초(民草)들의 번영(繁榮)과 행복(幸福)을 이루도록 도와주고 여러 악귀(惡鬼)를 몰아내시고 재앙(災殃)과 돌림병을 막아주신다고 했다.
고지도에 보면
양천향교(陽川鄕校)의 주산이 궁산(宮山)이다.
양천향교 명륜당(明倫堂)의 주련(柱聯) 중에
反身而誠 樂莫大焉 반신이성 낙막대언
자기 자신을 돌이켜 보아 성실하면, 즐거움이 이보다 더 클 수 없다.
鳶飛戾天 魚躍于淵 연비려천 어약우연
솔개는 날아 하늘에 이르고, 물고기는 못 속에서 뛴다
현 양천향교입구에 양천향교(서울특별시 향교대단) 건물이 눈에 띤다.
양천향교(陽川鄕校)에서 옛 관아터에 겸재정선미술관이 있다. 정선의 예술과 삶을 조명하고 있다.
겸재(謙齋) 선생은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의 문하에 입문하여 성리학과 밀접한 연관을 맺게 된다.
성생의 뛰어난 화재(畵才)와 평생의 업적을 높이 평가한 영조의 파격적인 배려 덕택임을 부인할 수 없다. 84세를 일기로 1759년 3월 (영조 35) 필생의 화업을 마감하고 서거하였다.
겸재(謙齋) 선생은 영조 16년(1740년 12월 11일) 양천현령(종5품)으로 부임하여 영조 21년(1745년 1월) 양천현령의 임기를 마치고 항양으로 돌아갔다.
이 때 그림 양천현아도(陽川懸衙圖)가 관아의 흔적을 남겼다.
많은 그림 중에 어떤 의미로 기록화(記錄畵)적인 성격이 있으나 예술가로써 예술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진정한 내면의 생각를 표현 한 것이 망원도(望遠圖), 망부석도(望夫石圖)이 아닌가 한다.
궁산에서 강변으로 가면 마곡대교와 방화대교가 보인다
다시 강변에서 서울식물원으로 갔다.
서울식물원은 습지원,
습지생태공원, 서울식물원호수공원,
주제원, 서울식물원이 있다.
이 중 식물문화센터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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