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천(安養川)과 한강이 만나는 지점에서 한강 하류로 조금 내려오면 증미산(拯米山)이 있다.
증미산 중에 영춘화(迎春花)가 활짝 피었고
독서하는 분도 있었다.
조선시대 염창동 앞 한강 강물은 폭이 좁고 물살이 세게 흘러 곡식을 실은 세곡선(稅穀船)이 한강을 거슬러 가다가 자주 좌초됐는데, 산 아래에 사는 마을 사람들은 물에 빠진 곡식을 건져 주린 배를 채웠다. 그래서 염창산은 '증미산(拯米山)'으로도 불린다. '증미(拯米)'는 '물에서 건져낸 젖은 쌀'이란 뜻이다.
당시 서해안 염전에서 채취해 온 소금을 서울로 운반하는 뱃길 어귀인 염창동에는 커다란 소금 보관창고가 만들어졌다. 소금을 배에 실어 한강을 거슬러 오르면 물에 녹는 경우가 많아 이곳에 내려 보관한 후 육로로 운반하곤 했다.
증미산(拯米山)는 소금창고가 있기 때문에 염창산(鹽倉山)이라고도 한다.
증미산(拯米山)에는 귀신바위와 김말순 장군 설화가 전해온다.
집채만한 바위가 제멋대로 하늘을 날아다니며 염창동 사람들을 해쳤는데, 충청병마절도사 김말손(金末孫) 장군이 귀신바위에 호통을 치고 활을 쏴 바위를 멈추게 했다는 이야기다. 바위에 붙은 귀신은 화살을 맞아 피를 흘리며 죽었고 마을 사람들은 장군을 기리기 위해 귀신바위 옆에 영벽정을 지었다고 한다. 현재 영벽정은 남아 있지 않고, 소금창고가 있던 자리도 아파트촌으로 변했다.-[우리동네 옛 이야기] [35] 강서구 염창동
또 다름 전설은 올림픽대로가 건설하기 전에는 증미산(拯米山) 절벽 아래까지 강물이 흘고 강 중에 2개의 바위가 기둥처럼 솟아난 아름다운 강변이었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이 바위는 광주에서 떠내려왔다하여 광주암이라 불리었다고 한다. 귀신바위가 광주암이 아닐까 한다. 이 광주암으로 배가 좌초되었을 것 같다.
택지개발로 매몰위기에 처한 이 광주암을 원형대로 보존하기 위해 호수공원으로 조성하였다.
여기에 공암에서 출생하여 생을 마친 동의보감(東醫寶鑑)의 저자 허준(許浚 AD1539~1615)을 기려 허준근린공원이라 이름하였다. 호수로 들어가는 곳에 허준 동상이 있고,
기둥처럼 생긴 바위가 호수 안에 있다.
바위 위 고양이가 한가롭다.
허준근린공원에서 한강으로 이어지는 구암나들목진출로가 있다.
증미산과 허준근린공원 사이에 가양대교가 있다.
가양대교에서 올립픽대로를 따라 구암나루근린공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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