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군당(府君堂)은 민간신앙의 대상물인 신을 모셔 놓은 신당이다. 일반적으로 마을을 수로하는 신당(神堂), 성황당(城隍堂)과 달리 서울을 중심으로 한 경기지역에서만 불리던 당의 명칭이다. 부군당은 조선전기부터 한양의 각 관아에 별도의 부속시설을 설치하여 관아의 수호신을 모신 사당으로 부군당(附君堂) 또는 부근당(付根堂)이라고도 하였다. 대부분의 부군당이 서울지역에 집중되어 있으며 서울에서는 한강변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부군당의 ‘부군’이 한자어 府君, 府根, 府群, 付根, 富降, 符君 등 다양하게 표기되어 왔다. 이들 중, 가장 보편적으로 쓰였던 것이 ‘府君’이다. 이 용어가 등장한 것은 일제강점기때인 1937년 서울 무가를 조사한 아카마쓰 지조(赤松智城)ㆍ아키바 다카시(秋葉 隆)이 펴낸 《조선 무속(朝鮮巫俗)의 연구》에서 ‘부군말명(府君萬明)’이라는 용어가 쓰여지면서 부터이다.
- 우리문화신문=양종승 박사 참조
남산 부군당(府君堂)은 표와 같다.
현재 위치는 다음과 같다.
서빙고동 부군당(西氷庫洞 府君堂)은
인조 13년(1635)에 중수(重修)하였으며, 당을 처음 세운 시대는 15세기 말 또는 16세기 초로 추정하고 있다. 조선 후기 신당의 건축양식을 보여줄 뿐 아니라, 서울지역의 동제 신앙을 보여주는 소중한 자료이다.
1973년 1월 26일 서울특별시의 민속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었다.
동빙고 부군당(東氷庫 府君堂)은
대략 400년 되었다고 한다. 달리 전하는 전설에는 구한말 시절에 애국지사가 호국정신을 기르기 위해 단군신을 모시는 신당을 세워 당시 주민들에게 애국심을 고취시켰다고도 한다. 예부터 오랜 내력을 지닌 부군당과 구한말 역사적 의식을 반영한 부군당이 서로 착종되어 부군당의 내력을 다양하게 한다. 하지만 역대의 문헌을 통해보면 이는 오랜 부군당의 전통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풍속에 각사 안에 다들 신을 모시고 제사하는 것이 있는데 부근이라 한다. 행해온 지 이미 오래되어 능히 혁파하는 자가 없었다. 이때에 이르러 헌부가 먼저 지전을 불사르고 각사에 관문을 보내어 다 불사르게 하여 그 제사를 금하니 쾌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國俗 各司內 皆設神以祀 名曰付根.行之旣久 莫有能革者. 至是 憲府先焚紙錢 傳關各司皆焚之 禁其祀 人多稱快)”라는 부군당의 내력에 대한 기록이 『중종실록(中宗實錄)』 1517년(중종 12) 8월 13일(丙辰)에 나오기 때문이다.
현재 남아 있는 당은 1945년에 중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 신의 초상화를 다시 제작하였다고 전해진다.
보광동 부군당(府君堂)
원래는 지금의 위치에서 남쪽으로 50보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러다가 1941년 일제가 경원선 철도를 개설하면서 철도부지로 편입되어 사당이 헐리고 현재의 위치로 옮겨지었다.
한남동 부군당(府君堂) 은
큰한강당과 작은한강당이 있었다. 두 곳 모두 음력 1월 1일에 마을의 안녕을 위해 무당굿 형식의 마을굿이 전승됐었으나 현재는 큰한강당에서만 마을굿이 전승되고 있다. 작은한강당에서는 마을굿을 도맡았던 마을의 유일한 어른이 더 이상 마을굿을 맡을 수 없게 되자 전승이 끊겼다.
당 안에는 부군당과 용궁당이 함께 있는데, 용궁당은 한남대교 입구 근처에 있었는데, 한남대교가 건설되면서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1972년 큰한강당 안으로 옮긴 것이다. 부군당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부군부부가 이곳의 주신이다. 현재는 한남동 작은한강부군당 보존위원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동빙고 부근에는 제천정지(濟川亭址)가 있으며 세종 때 한강의 수위(水位)를 재기 위해 제천정(濟川亭)아래에 수표지(水標址)가 있다.
이태원 부군당
부군당에서의 ‘부군’이라는 의미는 한민족이 이 땅에 삶을 영위하면서부터 구축해온 신앙의 모체로써 ‘빛’을 뜻하는 영적을 말한다. 따라서 한민족은 고대사회에서부터 빛을 통해 사상과 인생관을 설정하였고 이를 모체로 하여 신앙체제를 구축하였다. 이는 궁극적으로 현세적 길복을 추구하고자 하는 삶의 풍요로움을 실천키 위함이다.
이곳에 봉안된 부군 할아버지나 부군 할머니를 ‘붉은 할아버지’ 또는 ‘붉은 할머니’이라고 부른다. 이와 같이 ‘붉은’이란 용어는 아직까지도 무속현장에서 신봉자들에 의해 뿌리 깊게 쓰이고 있으며 그 역사는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현재 조망(眺望)이 좋아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남산 부군당은 마포구 공민왕신당(恭愍王神堂)과 유사한 흐름이 있다.
부군당 옆에는 유관순열사추모비가 부군당보다 크게 부각하고 있다.
마치 마포구 공민왕신당(恭愍王神堂) 옆
한옥 광흥당(廣興堂)이 있다. 광흥당(廣興堂)이 주가 된 것처럼 유사한 흐름이 있다.
광흥당(廣興堂)은 광흥창(廣興倉)과 유사하여 혼란을 일으킬 수 있으며 신당(神堂)과는 별개로 한옥문화공간으로 전통문화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또 공민왕신당(恭愍王神堂)은 광흥창(廣興倉)을 관리하는 권한으로 면세(免稅)와 공력(公力)을 면해주기도 했다.
서빙고 부군당(西氷庫府君堂)과 동빙고 부군당(東氷庫府君堂)도 공민왕신당(恭愍王神堂)처럼 얼음창고를 관리하는 권한을 받은 것이 아닐까 한다.
조선시대 관청에 소속된 얼음창고, 빙고(氷庫)는 서빙고(西氷庫), 동빙고(東氷庫), 궁궐 안의 내빙고(內氷庫) 두 곳 등 총 4곳이었다.
동빙고(東氷庫)가 국가 제사용 얼음, 내빙고(內氷庫)가 궁중전용 얼음을 저장한 데 비해, 서빙고(西氷庫)는 궁중, 문무백관 및 환자나 죄수들에게 나누어줄 얼음까지 저장하였다.
동빙고는 두모포(동호대교 북단의 포구), 서빙고는 용산구 둔지산 자락에 설치됐다. 서빙고는 왕실과 문무백관 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 의금부·전옥서 죄수들에게까지 나눠줄 얼음을 보관해 동빙고에 비해 규모가 12배나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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