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홍유능 해설에 박승규 선생님께서 하셨다.
홍유능(洪裕陵)에는 황제능(皇帝陵), 원(園), 묘(墓)가 있다.
황제능(皇帝陵)에는 홍릉(洪陵)과 유릉(裕陵)이 있으며
정자각(丁字閣)대신에 침전(寢殿)이 있다.
홍릉(洪陵)에는
고종황제(高宗皇帝)와 청량리 홍릉(洪陵)에 천장(遷葬)한 명성황후(明成皇后) 민씨(閔氏)의 능이고, 홍릉(洪陵)은 황제(高宗皇帝)의 능(陵)이라 알려져 있으나,‘홍릉’이라는 능호(陵號)의 유래는 1897년 명성황후(明成皇后)의 능을 조성하면서 비롯된 것이다.
홍릉은 고종산릉주감의궤(高宗山陵主監儀軌)의 경우 일제에 의해 주도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축소하거나 생략된 부분이 많다. 조각은 아이바 히코지(相羽彦次郞) 등 일본인 조각가다,
유릉(裕陵)는 순종황제(純宗皇帝)와 능동 어린이공원에서 천장(遷葬)한 순명효황후(純明孝皇后), 계비(繼妃) 순정효황후(純貞孝皇后)의 삼합장릉(三合莊陵, 同封三室)이다
홍릉과 유릉 석물(石物)을 비교하면 두 황제릉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현재의 홍유릉(洪裕陵)에 천장(遷葬)하기전 청량리 홍릉(洪陵)의 원찰(願刹)는 청량사(淸凉寺)였으며 순명효황후(純明孝皇后)가 유강원( 裕康園) 시절 아차산에 있는 영화사(永華寺)가 원찰(願刹)이었다.
홍릉과 유릉은 조선왕실의 제례를 축소 생략시킨 일제에 의해 조포사(造泡寺)가 없는 유일한 능이다.
원(園)에는 영원(英園), 회인원(懷仁園)이 있으며
영원은 황태자 영친왕(英親王)과 황태자비(皇太子妃)의 원이고, 회인원(懷仁園)는
황세손(皇世孫) 이구(李玖)의 원이다.
묘(墓)는 다음과 같다.
의친왕묘(義親王墓), 의친왕 이강(義親王 李堈)과 덕인 김씨 의 묘이다
덕혜옹주묘(德惠翁主墓) 고종의 막내(고명)딸인 덕혜옹주의 무덤
귀인장씨묘(貴人張氏墓) 고종의 후궁이자 의친왕 이강의 생모인 귀인 장씨의 묘
광화당묘(光華堂墓) 고종의 후궁이자 이육의 생모인 광화당의 묘이다
삼축당묘(三祝堂墓) 고종의 후궁인 삼축당의 묘이다
수관당묘(修觀堂墓) 의친왕의 측실이자 이건의 생모
수인당묘(修仁堂墓) 의친왕의 측실이자 이우, 이주, 이곤의 생모
홍유능(洪裕陵)을 답사하고 다음에 사릉(思陵)을 답사했다.
사능관리소 해설사께서 수고하셨다.
노송(老松)이 사릉(思陵)를 지키고 있는 것 같다.
사릉(思陵)는 단종비(端宗妃) 정순왕후(定順王后)의 능이다.
단종의 누이 경혜공주(敬惠公主)가 출가한 해주 정씨(海州 鄭氏) 가족묘역(家族墓域)에 안장하고 단종(端宗)이 복위(復位)하고 묘(墓)에서 사릉(思陵)의 능호(陵號)를 받았다.
사릉(思陵)은 사가(私家)의 묘에서 추봉되었으므로 병풍석과 난간석이 없으며 묘(墓)와 능(陵)의 요소가 있다.
사릉권역에 있는 양묘사업소 묘포장이 있어 문화재청에서 관할하는 궁과 릉에 필요한 나무를 키운다고 한다.
사능에도 원찰(願刹)이 없다. 해주 정씨(海州 鄭氏) 가족묘역(家族墓域)내에 사릉(思陵)이 있어 해주 정씨(海州 鄭氏)가 원찰역할을 한 것이 아닐까
홍유능과 사능에 원찰이 없다는 것이 특이하다.
참고로 조선왕릉조사보고서/국립문화재연구소/사능과 홍유릉내용과 배능의(拜陵儀)가 필요한 분은 연락주세요. pdf파일로 용량이 커서 여기에 첨부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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