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릉을 답사하고 지킴이 박훈재 성생님 댁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김포골드 사우역에서 만나 여러대의 차량으로 장릉에 도착하였다.
장릉에 들어가자마자 김포시 해설사 해설하셨다.
숲을 지나가는 데 어린들이 옹기 종기 모여서 나무를 조각함을 기념하여 촬영를 하고 있덨다.
곧 연못이 보였다. 창포가 예쁘다.
연못 옆에 재실이 보인다.
금천교(禁川橋)를 지나 홍살문(紅箭門)에서 정자각(丁字閣)이 보인다. 해설사님과 함께답사기념 촬영을 하고
정자각으로 올라갔다.
정자각이 언덕에 있어 신로(神路)가 경사가 있다.
정자각 옆에 비각(碑閣)과 守僕房이 있고 그 사이에 육경원(毓慶園) 받침돌이 있다.
이 받침돌은 1632년(인조 10)에 흥경원을 장릉으로 격상시키면서 종전에 있던 석물들 중 사용하지 않게 된 밍루블 능 좌측 언덕에 묻었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육경원의 비석 받침돌이 지상으로 노출되어(2007) 이 자리에 옮겨서 보관하고 있다.
비각(碑閣) 표석(表石)에
朝鮮國 조선국
元宗大王章陵 원종대왕장릉
仁獻王后祔左 인헌왕후부좌
로 되어 있다. 표석에 인헌왕후가 왼쪽에 서각(書刻)되어 있는 것은 원종(元宗)을 중싱으로 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해설사의 해설이 끝나고
유승후 선생님이 왕릉 건축에 대해 해설하였ㅇ으며
손영란 선생님은 숲 해설하였다.
장릉에대한 답사를 마치고 박훈배 선생님 집으로 갔다.
여기는 시인의 마을이란다.
집들의 정원 중에 몇 곳이다.
장릉답사 중 몇가지 다른 릉과 차별되는 곳이 있다.
한글로 장릉하면 장릉(長陵), 장릉(章陵), 장릉(莊陵)이 있다.
릉에 연못이 있는 곳은 융릉(隆陵) 동구릉 내 숭릉(崇陵), 태릉(泰陵), 홍릉(弘陵), 장릉(章陵)이 있다.
김포와 가까이 있어 비행기가 자주 왕릉(王陵)위로 지나간다.
홍살문에서 전자각까지 경사가 있다.
답사에 반장을 위시하여 여러 선생님들의 협조로 마무리를 하였다. 멋진 답사였다.
김포(金浦) 장릉(章陵)
김포 장릉은 원종(元宗)과 인헌왕후(仁獻王后) 구씨(具氏)를 모신 능이다.
선조(宣祖)의 5째 아들 정원군(定遠君)이다. 인조(仁祖)의 부(父)이다.
정원군(定遠君)은 양주군 곡촌리에서 묻혔다.
인조(仁祖)가 왕위에 오르자 정원군(定遠君)은 대원군(大院君)으로 봉해졌으며 묘(墓)가 추숭되어 흥경원(興慶園)이라 했다.
인헌왕후(仁獻王后) 구씨(具氏)가 승하하자 1626년 김포현 탄현면 갈현리 지역 성산城山에 안장되었으며 묘호를 육경원毓慶園이라 하였다.
1627년 인조는 정원군의 묘를 김포현으로 천장(遷葬)했고, 흥경원(興慶園)이 이곳으로 천장(遷葬)하면서 원호(園號)를 흥경원(興慶園)을 이라 합쳐 불렀다.
천장과엊을 기록한 『興慶園移葬時禮葬都監儀軌와
의궤에 수륙반차도가 있다.
1632년 다시 추존(追尊)하여 묘호(墓號)를 원종(元宗), 능호(陵號)를 장릉(章陵)이라 하였다.
부군인 정원군이 원종으로 추존됨에 따라 인헌왕후로 추봉追封되었다.
원에서 능으로 승격되자 원제園制를 능제陵制로 바꾸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으며 도감을 설치하여 석물만 새로 제작하여 배설하였다.
장릉(章陵)의 원찰(願刹) 는 봉릉사(奉陵寺)기 있으며 봉릉사의 원명은 고상사(高上寺)로서 1970년 금정사(金井寺)로 개창된 후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금정사(옛 봉릉사) 전경, 경기도 김포시 풍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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