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정(離鄕亭)에서 본 도담삼봉이다.
터널을 지나면 좌측에 이향문(離鄕文)이 있고, 이향문(離鄕文)에서 언덕을 오르면 이향정(離鄕亭)이 있다.
1986년 10월에 완공된 충주다목적댐을 완공하면서 단양 매포읍 하괴리 300세대의 사람들이 보금자리를 떠남을 기록한 이향문(離鄕文)과 건립된 이향정(離鄕亭)이 있다.
도담삼봉(島潭三峯)에는
조선시대에 삼신산(三神山)이야기, 민간전설인 장군봉(將軍峯)이야기, 삼봉(三峯)의 소유권, 정도전 동상, 삼봉(三峯)과 관련된 그림이야기가 있다.
1.삼신산(三神山)
도담(島潭)는 큰 못(池)에 섬이 있고 삼봉(三峯)는 세 봉우리가 있다는 것이다. 봉우리는 산의 봉우리이다. 큰 못에 산이 있다는 것은 신화(神話)에 나오는 삼신산(三神山)을 말한다.
삼신산(三神山)는 신선이 사는 봉래산(蓬萊山), 방장산(方丈山), 영주산(瀛洲山)이다. 삼신산에 불로불사(不老不死)를 주는 열매가 달린 나무가 우거지게 숲을 이루고 있으며 신선들이 살고 있다. 진시황과 한 무제가 불사약(不死藥)을 구하러 갔던 곳이다.
조선 선비들은 산수가 수려한 단양 땅을 옛사람들은 신선이 살 만한 고장으로 보았던 것이다. 도담삼봉(島潭三峯)는 조선시대 선비들의 시문이나 그림은 근본적으로 도인(道人)이나 신선(神仙)의 삶을 그리워하는 이상향(理想鄕)이었다. 올림프스산이 서양의 유토피아라면 동양의 유토피아는 삼신산이다.
도담삼봉(島潭三峯)과 신선(神仙)과 관련한 낸용을 다음과 같다.
다산 선생도 도담(島潭) 관련 단양절구오수(丹陽絶句五首)에서 봉도(蓬島)는 봉래산(蓬萊山)를 표현했으며
봉래도가 날아와 푸른 못에 떨어진 곳 蓬島飛來落翠池
추사도 이곳에 와서 시 한 수 남겼는데 이 시에서 신공(神工)은 신선의경지에서 만든 것이라앴고
神工千缺杳難攀 : 아득한 신의 공력 따라잡기 어렵구나
퇴계 선생은 시에서 신선의 뗏목이라했으며
신선의 뗏목을 취벽에 기대고 잘 적에 爲泊仙楂橫翠壁
이중환(李重煥·1690~1752)은 도담삼봉에 대해 돌로 인위적으로 쌓았다는 뜻인 '석가산 같다'고 표현했다.
'강물이 휘돌아 가면서 모여 깊고 넓다. 물 가운데 세 개의 돌봉우리가 각각 떨어져 한 줄로 선 것이 활줄같이 곧으며 쪼아서 새긴 것이 기이하고 공교로워서 인가에서 쌓은 석가산(石假山)같다.'-<택리지 복거총론 산수편>
계상 이징하(季祥 李徵夏)와 함께 도담삼봉 사이에 배를 띄우고 피리 부는 사람을 봉우리 사이에 앉게 하여 연주를 시키면서(季祥招與泛舟於三峰之間. 使笛人坐峰間奏數曲) 신선 같은 뱃놀이를 하였다.
김창협(金昌協)의 도담에 대한 시 에 신선에게 길을 묻고 싶다 하였다.
짐짓 나무꾼에게 신선 길을 묻고 싶네 欲借樵柯問仙路
2. 민간전설인 장군봉(將軍峯)이야기
삼봉(三峯) 가장 높은 가운데 봉우리를 장군봉, 북쪽 봉우리를 처봉(妻峯), 남쪽 봉우리를 妾峯이라 한다. 장군봉은 처봉을 등지고 첩봉을 바라보는 형상으로 되어 있는데, 전설에 따르면 남편이 아들을 얻고자 첩을 들여 아내가 돌아앉은 것이라고 한다. 각각 아버지봉, 아들봉, 딸봉이라고도 한다.
3. 삼봉(三峯)의 소유권
설화에 의하면 도담삼봉은 정선군에 있던 삼봉산이 홍수 때 떠내려온 거라 정선에서 단양에 매년 세금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때 어린 소년이었던 정도전이 도담삼봉을 우리가 갖고 싶어서 갖고온 것도 아니고 오히려 물길이 막혀 피해를 보니 정선군에서 도로 가지고 가라고 말하여 세금을 내지 않았다고 한다. 정도전은 도담삼봉을 특히 사랑하여 자신의 호 '삼봉'도 여기에서 따왔다고 한다.
4.정도전 동상
광장에는 삼봉의 동상도 세워 놓았다. 정도전은 부모가 인연을 맺은 곳이 삼봉(三峯)이므로 호(號)를 삼봉(三峰)이라고 지었다.
정도전의 집안은 신분적으로는 향리에서 출발하여 사족(士族)으로 성장한 전형적인 신흥 사대부라 할 것이며, 경제적으로는 중간계층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5 삼봉(三峯)과 관련된 그림
모터보트가 삼봉을 둘러서 포말(泡沫)을 그리고 있고 저 멀리 돛이 없는 돛단배가 유람하고 있다.
삼봉은 강 수위가 낮아서 흰 띠를 이루고 있다. 아마 충주댐이 완공된 후 삼봉이 매우 높이잠겨 있을 때일 것이다.
충주댐이 완성되기전 1917년 사진이다.
1917년 전 조선세대 그림에서 삼봉주위에 오래톱이 얼어 있다.
겸재가 그림 삼도담(三島潭)에 모래톱이 있고 수양버들이 보인다.
김홍도 삼봉(三峯)그림에도 미루나무와 모래톱이 있었다.
한 사람 기행과 자존감이 강했던 칠칠(七七) 최북(崔北)의 단구승유도(丹丘勝遊圖)에 그 시절 도담삼봉이 남아 있다.
최북(崔北) 작 ‘단구승유도(丹丘勝遊圖)
己巳春季書于寒碧 기사년(1749) 늦은 봄에 한벽루에서 쓰다.
樓月城崔埴有用來 월성 최씨 식이 마침맞게 와서
與之同遊畵之 그와 함께 놀며 그리다.
道甫 도보(이광사의 字)
5. 도담삼봉(島潭三峯)의 정자(亭子)
가장높은 봉우리에 '삼도정(三島亭)'이라는 정자가 있다.
퇴계 일행은 험한 물길을 피해 조심스럽게 배를 대고 중봉의 정자에 오른다. 이 정자는 ‘삼봉정(三峰亭)’이라 불렀다. 1766년 단양군수 조정세가 '능영정(凌瀛亭)'이라는 이름의 정자를 지었는데 민폐를 끼친다며 헐어 내었고, 이후 1807년 김도성이 사각형 모양의 정자를 지었지만 이것 역시 1972년 대홍수로 유실되었다. 지금의 삼도정은 단양지역 시멘트 생산업체인 '성신양회'가 대홍수(1972)가 지나간 1976년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육각형 정자를 건립, 단양군에 기증했다.
도담삼봉(島潭三峯)는 조선시대에 선비의 글에서 이상향을 꿈꾸고 서민들은 처와 첩의 관계로, 지방간의 소유권을 주장함으로 서로 경쟁의 관계를 표현하고 있다. 도담삼봉은 어느 특정의 소유물이 아니고 모두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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