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양평사나사(舍那寺)

김시동 2025. 5. 30. 18:40

사나사(舍那寺)는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에 위치한 사찰이다

양근군읍지(楊根郡邑誌) 지도에 따르면 옥천면은 양근군(楊根郡) 고읍면(古邑面)이다. 고읍면에서 중요 시설은 사직단(社稷壇, 社壇)과 향교(鄕校) 그리고 사나사(舍那寺)가 있다.

1908년에 양근군(楊根郡)과 지평현(砥平縣)이 합해져 양평군(楊平郡)이 되기 전에는 사직단과 향교가 있다는 것은 양근군에서 고읍면(古邑面)이 지금의 읍()으로 중요한 지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나사는 신라 경명왕 7(923)에 고승인 대경대사(大鏡大師) 여엄(麗嚴)이 제자 융문과 함께 창건하고 5층 석탑과 노사나불상(盧舍那佛像)을 조성하여 봉안하고 절 이름을 사나사로 하였다.

사나사(舍那寺)는 선조 25(1592)에 일어난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사찰이 불타버린 것을 선조 41(1608)에 단월(檀越) 한방손(韓芳孫)이 재건하였다

순종(純宗) 원년(1907)에 일제의 침략에 항거하는 의병들의 근거지라하여 사찰을 모두 불태웠다.

1950년에 일어난 6.25사변으로 인해 또 한 번 사나사는 전소가 되었다.

1956년에 주지 김두준과 함문성이 협력하여 대웅전, 산신각, 큰 방을 재건하고 함씨각을 지었다. 이렇게 많은 수난을 당한 사나사이다. 그 후 여러 번의 재건을 거쳐 최근에는 1993년에 대웅전과 지장전을 재건하였다.

 

옥천면에서 사탄천(沙灘川) 상류을 따라 가다보면 사나사로 가는 길에 사나사관리사무소가 있다.

여기서부터 계곡이 나타난다. 계곡을 따라서 일주문 있고,

현재 건조되고 있는 연천군 신도비(延川君 神道碑) 복원 공사중이다.

사나사 입구에 연안이씨(延安李氏) 부사공파 대종회(副使公派 大宗會)가 가까이 이 있기 때문인가

이 계곡 어딘가에 작은 구멍이 있는데, 함공혈(咸公穴) 혹은 함왕굴(咸王窟)이 있다고 하였지만 현재는 없어졌지만 여기서 함씨 시조인 성주 함왕(咸王)이 탄생했다고 전한다.

 

조금 더 올라가면 사나사 대웅전이 나타난다.

사나사 대적광전(大寂光殿)에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중심으로 협시불(脅侍佛)로 노사나불(盧舍那佛)과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을 모시고 있다.

협시불(挾侍佛)이 보살(菩薩) 모양을 하고 있다.

 

화엄경(華嚴經)은 정식 명칭인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을 줄여 부르는 말이기도 합니다. '화엄(華嚴)'은 꽃의 향기로서 모든 것이 꽃향기로 가득 차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로서 화엄경은 세계의 모든 존재가 하나의 꽃향기로 이루어져 있다는 개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화엄경은 불교의 대표적인 경전 중 하나로서, 불교의 근본 원리와 가르침을 담고 있는 중요한 경전이기도 합니다.

화엄 경계에서 보면 시방삼세의 모든 부처는 비로자나불의 화신이다. 일체 중생도 비로자나불의 화신이다. 일상생활 속에 부처의 가르침을 찾을 수 있다.

불교의 근본 원리와 가르침을 주는 부처가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다,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은 모듬 부처님의 본위(本位), 근본이 되므로 진리의 몸이란 뜻에서 법신불(法身佛)이라 한다.

법신불은 그 근본이 되는 몸이라 하며 부처님의 몸을 삼신(三身)이라 말한다. 즉 법신(法身), 보신(報身), 화신(化身)이다. 보신(報身)은 수도(修道)의 과덕(果德)으로 얻어진 과보신(果報身)이란 듯이다. 화신(化身)은 응화신(應化身)으로 역사적 부처님을 뜻한다.

 

보신(報身)은 자수용신(自受用身)과 타수용신(他受用身)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자수용신(自受用身)은 수행을 통하여 얻어진 불과(佛果)와 내적 체험에 의해 스스로 증득한 자내증(自內證)의 법문을 스스로 수용하고 즐기는 불신이며, 타수용신(他受用身)은 이 깨침의 보과를 뛰어난 법문을 다른 사람에게 수용시키기 위해 지도하고 교화하는 불신이다.

 

타수용불신으로는 아미타불(阿彌陀佛)과 약사여래(藥師如來)가 있으며 이들 부처님은 중생을 위한 특별한 권능과 함께 극락전(極樂殿) 약사전(藥師殿) 등의 독립된 전각에 봉안된다.

 

자수용 보신불은 독림 전각에 안치되지 않고 있다. 다만 대적광전에서 비로나자불의 왼쪽 협시불(脅侍佛)로 봉안될 뿐이다.

 

대적광전 안에 노사나불은 부처님모습보다 보관(寶冠)을 쓰고 보배 구술을 장식한 보살로 더 많이 묘사되고 있다. 특히 탱화(幀畵)의 경우에는 이것이 심하다.- 사찰 그 속에 깃든 의미/김현준/교보문고

이는 비로자나불과 격을 두는 이유도 되지만 '화엄(華嚴)'은 꽃의 향기로서 모든 것이 꽃향기로 가득 차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로서 화엄경은 세계의 모든 존재가 하나의 꽃향기로 이루어져 있다는 개념을 강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대웅전을 마주보고 범종각(梵鐘閣)이 있으며

경내에는 고려시대 만든 양평 용천리 삼층석탑(三層石塔),

삼측석탑 기단부에는 먹글씨가 보인다. 사나사 증축에 시주한 일반인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고려 후기 태고 보우(太古 普愚)의 사리를 모신 사나사(舍那寺) 원증국사탑(圓證國師塔)

사나사 원증국사 석종비(舍那寺 圓證國師 石鐘碑)가 있다.

사나사 원증국사 석종비(舍那寺 圓證國師 石鐘碑)에 총탄의 흔적도 남아 있다.

사나사 원증국사 석종비(舍那寺 圓證國師 石鐘碑)는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 석종비(石鐘碑)와 유사하다.

 

대웅전 옆에 함씨각(咸氏閣)이 있다.

함씨각(咸氏閣)은 함규(咸規)가 사후에 사나사를 원찰(願刹)로 삼고 함씨각을 지은 것으로 보인다. 양근지방을 근거로 세력을 확장했던 함씨들이, 사나사에 많은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함규라는 고려의 개국공신을 이곳에 모셔, 함씨들의 정신적인 지주로 삼았는지도 모른다.

 

사나사는 임진왜란, 일제강점기, 6.25 한국전쟁 등으로 많은 수난을 겪어왔으며 사나사 경내에 특이하게 불교와 관련이 적은 연안이씨 신도비, 함씨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