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

종묘 북쪽 담장이 복원되었다.

김시동 2022. 8. 2. 19:06

종묘 정전 동문(東門)앞에서

종묘지킴이 선생님이 땀을 닦으면서 해설하기도 하였다.

복원된 종묘 북쪽 북신문(北神門)이 보인다. 저 멀리 도봉산도 보인다.

 

종묘관통도로(宗廟貫通道路)가 1932년 4월 22일 개통(開通 (동아 昭和7년 4월 21일 1932년))되어 종묘담장이 변화하였고 다시 2022년 7월 22일 복원되어 개방한다.

 

종묘가 관통도로가 개통되기 전 1931년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의 종묘배치도(宗廟配置圖)이다.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에 서문(西門)과 북신문(北神門)이 있다.

서문(西門)은 문외에 서문 좌우로 별도의 구조물이 있고 필요한 물자(物資)와 인력(人力)이 필요할 때 사용하는 문이고

북신문(北神門)은 종묘제례에 많은 인원과 비용을 줄이기 위해 거가(車駕)가 움직이지 않고 북신문(北神門)을 이용하여 왕이 종묘제례(宗廟祭禮)에 참석한다.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의 종묘배치도(宗廟配置圖)와 문화재관리국(文化財管理局) 실측조사보고서(實測調査報告書)을 비교해 보면

서문과 북문이 율곡로(栗谷路)가 개통되면서 없어지고 북쪽 종묘담장은 일직선이 되고 북쪽에 창경궁(昌慶宮)과 종묘(宗廟)를 이어지는 육교(陸橋)가 축조된다. 종묘담장에 창경궁과 통하는 문(門)이 축조된다.

소위 율곡로(栗谷路)가 개통되면서 북쪽의 창경궁의 대지가, 남쪽의 종묘의 대지을 율곡로가 공유하게 된다.

 

종묘담장 복원되면서 율곡로 확장공사(4차선에서 6차선으로)로 종묘쪽의 대지가 많이 훼손된 반면 창경궁 쪽의 대지가 비교적 적은 부분이 율곡로에 포함되었으며 일부 대지는 도로에서 대지로 복원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다음지도(복원후)와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의 배치도와 비교해 보면

조선고적도보에서는 북신문의 표고가 창경궁의 관천대(觀天臺)의 표고(標高)거의 같고 창경궁에서 북신문(北神門)을 들어가서 바로 계단(階段)이 올라가는 나타난다.

다음지도상 복원된 북신문(北神門)는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 보다 더 종묘쪽으로 위치한다. 이는 복원된 종묘담장이 원래의 담장으로 복원 되었다고 볼 수 없다. 앞으로 연구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