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천(安養川)과 한강이 만나는 지점에서 한강 하류로 조금 내려오면 증미산(拯米山)이 있다. 증미산 중에 영춘화(迎春花)가 활짝 피었고 독서하는 분도 있었다. 조선시대 염창동 앞 한강 강물은 폭이 좁고 물살이 세게 흘러 곡식을 실은 세곡선(稅穀船)이 한강을 거슬러 가다가 자주 좌초됐는데, 산 아래에 사는 마을 사람들은 물에 빠진 곡식을 건져 주린 배를 채웠다. 그래서 염창산은 '증미산(拯米山)'으로도 불린다. '증미(拯米)'는 '물에서 건져낸 젖은 쌀'이란 뜻이다. 당시 서해안 염전에서 채취해 온 소금을 서울로 운반하는 뱃길 어귀인 염창동에는 커다란 소금 보관창고가 만들어졌다. 소금을 배에 실어 한강을 거슬러 오르면 물에 녹는 경우가 많아 이곳에 내려 보관한 후 육로로 운반하곤 했다. 증미산(拯米山)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