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천(城北川)에는 많은 다리가 놓여 있다.
성북천(城北川)은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북악산 서쪽에서 발원하여 동남쪽으로 흘러 청계천으로 합류하는 지방하천이다.
삼선교(三仙橋)는 삼선평(三仙坪)에 있는 다리로, 성북천(城北川)을 건너 동소문(東小門, 惠化門)으로 가는 길에 놓여진 다리이다.
삼선평(三仙坪)은 동소문(東小門, 惠化門)밖, 지금의 성북구 삼선동, 동소문동 일대의 들판을 일컬으며, 조선 말기 군사훈련장으로 이용되었다.
삼선동 남쪽 옥녀봉에서 한 옥녀가 하늘에서 내려온 세 신선과 더불어 삼선평(三仙坪)에서 놀았다고 전한다. 이에 삼선평(三仙坪) 이름이 유래되고 삼선교에도 유래된 것같다.
삼선교에서 청계천(淸溪川)으로 합류하는 곳에 성북천교가 있다.
성북천교 가까이 신설동에서 청계천에 있는 하정로(夏亭路)는 조선초기 개국공신이자 청백리로 유명한 하정공 류관 선생의 정신이 깃든 뜻깊은 도로이다.
비우당교(庇雨堂橋)와 우산각(雨傘閣)이 인접한다.
조선 세종 때 청렴결백하기로 유명한 정승인 하정 유관이매우 검소하게 살아 겨우 오두막집 한 채를 구하여 거주했는데 이 집은 비가 오기만 하면 지붕이 새므로 우산을 받치고 책을 보았다고 한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유관의 집을 우산각(雨傘閣)이라 불렀고 이 동네는 우산각이 있다하여 우산각골이라 불려졌다고 한다.
우산각(雨傘閣)은 종로구 숭인동에 있던 ‘비우당(庇雨堂)’이란 옛 집에서 유래했다. 조선 세종 때 정승을 지낸 류관은 굉장히 청빈한 것으로 유명했는데, 비가 오는 날에도 방 안에서 우산을 펴고 비를 피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에 사람들이 그의 집을 '우산각(雨傘閣)'으로, 그 동네를 '우산각골'이라 불렀다. 그리고 조선 후기 실학자인 이수광[1]이 그 뜻을 살려 우산각 자리에 작은 집을 짓고 ‘비(雨)만 피한다(庇)’는 뜻의 ‘비우당(庇雨堂)’이라 이름붙였다. 후일 청계천을 복원하면서 류관의 청빈 정신을 기리기 위해 비우당(庇雨堂) 다리 이름하였다.
성북천(城北川)에는 오리가 오수를 즐기기도 했다.